행복은 누구나 원하는 것입니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이는 돈, 어떤 이는 명예, 어떤 이는 건강, 어떤 이는 사랑을 얻었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이기에 개개인의 행복을 꺼내 무게를 달아볼 수는 없지만, 얼마나 행복한지를 평가하는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계 행복지수 1위 국가는 히말라야 동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 부탄입니다. 국민소득이 2천 달러도 못 미치는 작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97%가 자신의 삶에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97위라네요. OECD국가 중 최하위라고 합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우리나라 성인남녀를 조사했더니 41%만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행복에 이르는 첫번째 길은 소유를 늘리는 것입니다.
소유가 늘어나면 행복을 느낍니다. 비록 일시적인 것이더라도 말입니다.
두 번째는 욕말을 줄이는 것입니다.
소유가 아무리 늘어나도 그에 따라 욕망이 같이 늘어나면 만족을 느낄 수 업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소유를 늘리고 욕망을 줄일 수 있을까요?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두 가지 방법을 다 알려 주었습니다. 소유를 늘리기 위해서는 복을 닦아야 합니다. 욕망을 줄이기 위해서는 도를 닦아야 합니다.
결국은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이든 복덕이든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고, 자기가 닦아서, 만들어서, 자기 것으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은 버리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딴 데서 찾고 있습니다. 엉뚱한 데서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낡은 믿음입니다.
행복을 딴 데서 찾는 재미있는 예가 있습니다.
똥배를 줄이는 방법을 봅시다.
첫 번째. 운명이라고 생가합니다.
똥배가 들어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립니다.
이것은 숙명론입니다.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지요. 내가 잘살지 못살지, 시험에 합격할지 떨어질지, 부자가 될지 가난한 자가 될지, 똥배가 들어갈지 나올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점쟁이한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제 똥배가 들어갈까요 안 들어갈까요? 혹시 들어가면 언제 들어갈까요?' 이게 바로 낡은 믿음입니다.
두 번째, 신에게 기도합니다.
제발 내 똥배가 들어가게 해달라고.
내 똥배가 들어가는 걸 왜 신에게 기원할까요. 단적인 비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낡은 믿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발, 제 똥배가 들어가게 해 주세요" 하는 것과 '제발 제가 행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세 번째, 단식에 돌입합니다. 피골이 상접할 때까지 굶습니다.
위의 두 가지 예보다 합리적이긴 합니다만 이것 역시 극단적입니다. 일시적인 효과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부작용이 생깁니다. 주변에 단식원 다니는 사람들 보면, 다녀서 조금 뺍니다. 좀 있으면 다시 살이 찝니다. 그러면 또 단식원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면 굶어서 빼고, 나오면 먹어서 찌웁니다. 이것 역시 낡은 믿음입니다. 극단적이고 고행을 통해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느 생각,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지양했습니다.
네 번째, 원인을 분석합니다.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립니다.
이것이 답입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잘 먹으면서 움직이지 않으니깐 똥배가 나옵니다. 이렇게 원인을 찾으면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리면 저절로 빠지게 됩니다.
낡은 믿음은 버려야 합니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인과를 믿는 것입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인과를 믿는다는 것은 나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내 작품이라고 믿는 것. 이것이 불교를 믿는 것입니다.
내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고칠 수 있습니다. 아직 고치진 못했더라도, 내가 고칠 수 있다는 확신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내가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구걸을 해야 합니다. 숙명에 구걸을 하든, 신에게 구걸을 하든, 극단적인 방법으로 찾으려고 하든, 윈인은 안에 있는데 밖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일시적인 해결책은 될지 몰라도 궁극적인 행복은 얻을 수 없습니다.
부처의 신도 중에서 빠세다니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은 대식가였다고 합니다. 매 끼니마다 반 말 정도의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살이 찌고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실 때 큰 몸을 흔들거리면 졸음에 빠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알려주시고 밥을 먹기 전에 읊도록 하였습니다.
곡식을 잘 먹인 큰 돼지가
흙먼지 속에 뒹굴며 누워 있듯
실컷 먹고 졸음에 시달리며
뒹굴뒹굴 누워 있는 어리석은 자는
계속해서 자궁에 들어감을 면치 못하리라.
빠세다니 왕은 식사 때마다 이 게송을 읊고 밥을 조금씩 줄어나갔습니다. 살이 점점 빠지고 몸이 가뜬해졌습니다. 몸이 가벼우니 건강도 좋아지고, 하는 일마다 잘되었습니다. 빠세다니 왕이 부처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자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또 가르쳤습니다.
건강이 으뜸가는 이익이요,
만족이 으뜸가는 재산이네.
신뢰가 으뜸가는 친척이요,
열반이 으뜸가는 행복이네.